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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수필

찌라시가 돌다.

by 황무지핵 2022.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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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지인들의 카톡에 찌라시가 하나 돌았다. 회사의 부회장이 곧 회장으로 진급하면서 대규모의 인력 조정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회사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가슴이 서늘했지만 한편 우리 사업부가 주 타겟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다. 누군가는 이 찌라시를 보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찌라시를 보고 서늘함과 안도감을 느낀 내가 약간 비굴하게도 느껴졌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부장님도 여전히 월급의 노예였던 것이다. 찌라시는 잠시 잊고 지냈던 현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일의 의미 따위, 워라밸 따위는 차가운 현실에 부딪히면 사치에 불과해지는 것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은 모두에게 똑같다는 것이다.
조금 더 상황이 나은 사람이야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월급에 의존해야 하고 회사에서 외면하는 순간 다 같은 처지가 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오히려 이런 처지에서 벗어난 사람이 더 소수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수십년에 걸친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경제적인 문제에서 독립되어야만 일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대단한 결론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저 일에서 의미를 찾는 우직한(또는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일이 재미있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런 질문에 부딪혀 더 깊이 몰입하지 못했다. "이 일을 하면 결국 경제적으로 안정되는가?"
SW개발과 문제해결은 사실 즐거운 일이었고 내향적이고 수학을 좋아했던 내 성격과도 맞았다. 하지만 몰입할 때마다 앞의 질문에 부딪혀 더 나가지 못했다. DB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고 자바 전문가가 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지금의 개발을 열심히 하면, 리더가 되면 경제적으로 안정되는가?

일에 대한 애정이 생길 때 마다 스스로 방해를 했기 때문에 다른 업무를 제안받았을 때 SW개발자로서 경력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은 큰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그저 회사를 좀 더 다닐 수 있고 좀 더 나은 고과를 받을 있다면 업무의 종류는 양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후에 찌라시가 하나 더 도착했다. 전날의 찌라시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다. 동기들을 만나 차 한잔 하며 얘기를 한 바탕 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외로운 마음도 좀 줄어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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