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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수필

마음의 준비

by 황무지핵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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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서에 부탁할 일이 있어서 회의를 요청했다. 나와 오래 함께 일해온 친한 수석 한 명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실무자 한 명이 같이 나왔다. 요즘은 직급이 사라졌기 때문에 서로의 직급이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는 얼굴 뿐이다. 그나마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반은 보이지 않는다. 나와 친한 그 수석은 최근까지 파트장을 하다가 올해 초 내려놓고 그 부서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 만난 그 실무자가 업무적으로는 고참이고 의사결정도 그 친구가 하는 것처럼 보였다. 희의는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안되는 이유를 대기 시작했고, 쉽게 해줄 수 없다는 듯 얘기를 했다. 마치 네이버에 협조를 요청하러 간 중소기업 직원같은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약간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 초 스스로 부서장을 내려놓았지만 작년에 나는 그 부서에 이런 저런 일을 거침없이 요구해 왔었다. 그 실무자는 우리 팀으로 전배를 온지 일 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일년전만 해도 서로의 처지가 이렇지는 않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작년말 부서장을 막 내려놓았을 때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꼈었다. 주변에서 극구 말렸음에도 내가 스스로 그만 둔 것이지만 분명히 김 빠지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전혀 권위적인 리더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에 대해서 조심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는 직장의 간판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어느 50대 유튜브에서는 직장을 나오는 순간 인간관계가 확 줄어들고 연락이 딱 끊긴다고 했다. 주민센터의 직업상담사도 대기업 부장님으로 은퇴한 사람들은 6개월 정도는 일부러 무조건 돌려보낸다고 한다. 일자리를 추전해 주어도 눈높이에 맞지않아 바로 거절하거나 취업을 해도 금방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좀 현실을 인식하고 눈높이를 낮춘 후에 오라는 의미일 것이다.

언젠가 나도 직장의 타이틀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수십년간 매일 하루 8시간 넘게 보내는 곳이 나를 전혀 상징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상징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충격이 너무 크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가끔은 이런 일이 있는 것도 좋겠다. 과거에 아마도 나도 모르게 주변에 갑질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좀 머쓱하다.

은퇴 후에는 내가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현명한 부자 투자자가 되어 보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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